"목성도 나쁘진 않았지만..."
길 잃은 외계인
질리언
Zlien
41세 · 미국 · 163cm · 57kg · 12월21일생
에덴의 우주인
★☆☆☆☆
에덴의 우주인
[명사] 우주-인 宇宙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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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비행을 위하여 특수 훈련을 받은 비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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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상 과학 소설 따위에서 지구 이외의 천체에 존재한다고 생각되는 지적인 생명체.
그의 경우에는 2번의 의미, 외계인입니다.
지구에 귀환한 그가 가장 먼저 받은 것은 건강 검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미 몸의 대사가 모두 정지했는데 멀쩡히 살아있는, 기괴한 상황을 맞닥뜨리죠. 과학자들은 그의 몸을 자세히 연구하여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것은 죽은 인간의 몸을 미지의 물질이 잠식하고 있는 상태라고요. 인간의 세포 대신 외계 생명의 세포가 완전히 대체하고 있는… 그런 공포스러운 상황입니다.
하지만 별다른 공격성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유순하며 순종적이었기에 그는 연구에 협력하는 조건으로 안전을 보장받게 되었습니다. 물론 커다란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일반 대중에게는 비밀로 할 필요가 있겠지요.
✦성격
그는 성격을 숨긴 적이 없습니다.
그럴 방법을 알지도 못했던 것 같네요.
✦기타
그가 여러가지로 변한 것은 뇌손상 때문이 아닙니다. 아예 다른 개체로 바뀐 탓이죠.
별것도 아닌 변화구에 쉽사리 당황하고, 기억이 빠진 것도 인간 엘리엇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엘리엇의 몸에서 분리될 방법을 찾기 전까지는, 또 고의가 아니었더라도 그의 몸을 강탈한 이상 책임지고 그의 행세를 하기로 했습니다.
몸에서 분리된다고 해서 엘리엇이 돌아오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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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몸으로 느끼는 고통이란 그에게 다분히 이질적입니다.
다치기 싫어하는 것도 그 때문이에요. 외상을 입었다가 재생되면 주변 사람들이 놀라기도 할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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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의 결과
‘진짜’ 엘리엇은 모종의 사고로 목성 궤도에서 표류하던 중, 우연히 군체 형태의 외계 생명체와 마주쳤습니다. 그 역시 목성의 궤도를 떠돌던 우주미아임을 알고 난 뒤, 그들은 동병상련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죠. 언어와 표현은 달랐지만 그들에겐 남는 게 시간이었어요. 오랫동안 유대감을 쌓은 덕에 엘리엇은 오랜 우주 생활 동안 외로움을 덜 수 있었습니다. 그는 친구가 된 외계 생명체에게 질리언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고 친근하게 불렀습니다. Alien의 첫 글자를 Z로 바꾼… 참 직관적인 이름입니다.
지구 시간으로 얼마나 지났을까요. 엘리엇은 지구로 돌아갈 방법을 찾아냈지만 문제는 식량이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장기 항해에 비해 우주선에 비축된 식품의 양은 턱없이 부족했고, 아무리 자원을 절약하려 해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고향 별을 눈앞에 두고 굶어 죽을 위기에 처한 거예요.
지구로의 귀환 계획이 좌절되기 일보 직전, 질리언이 자신의 일부를 떼어 주었습니다. 소중한 친구 엘리엇을 살리기 위해서였습니다. 분석 결과 과학적으로도 질리언의 몸은 섭취 가능한 단백질로 이루어져 있었기에 ‘이론적으로는’ 무리가 없었어요. 설령 후환이 있더라도 엘리엇은 일단 살아야 했기에 응했습니다. 그렇게 엘리엇이 외계 생명체의 단백질 덩어리를 식량 삼아 버티는 동안 질리언은 점점 작아지고, 지구가 가까워 오고… 엘리엇은 아끼고 아낀 끝에 마지막으로 남은 한 덩어리를 먹으며 오랜 친구에게 감사와 작별의 인사를 전했습니다. 더는 남아있지 못할 질리언 역시 기쁘게 받아들였죠. 감동적인 영화의 한 장면 같았어요.
...그리고 그게 엘리엇의 마지막이었습니다.
질리언의 세포는 엘리엇의 몸을 찬찬히 잠식하다가, 마지막 한 덩어리까지 체내에 흡수된 순간 몸 자체를 완전히 빼앗아 버렸습니다. 얼결에 몸을 차지한 질리언도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단순히 인간은 먹어야 살 수 있고, 먹을 수 있다 하기에 내어 주었을 뿐인데… 뒤늦게 친구를 불러 봤자 엘리엇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선의의 결과가 이다지도 잔인할 줄 누가 알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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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그는 진짜 엘리엇을 대신해 엘리엇의 이름으로 지구에 안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당장 돌아온 순간부터 그 자신이 엘리엇이 아니라는 걸 설명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말재간도 없었거니와, 12년만에 귀환한 기적의 산증인으로서 이런저런 세간의 기대에 떠밀려 말할 타이밍을 놓치기 일쑤였죠. 그래서 그가 처음으로 자기 정체를 실토한 것은 건강검진 때였습니다.
인간의 감정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건 아니어도 필히 이 감정은 미안함이라고 불릴 겁니다. 사후세계가 있다면 엘리엇은 질리언을 원망하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미 일어나 버린 일, 어떻게 책임져야 할 지 감조차 못 잡던 그 때... 항공 우주국이 지대한 관심을 보여 왔습니다. "엘리엇의 몸에 손상을 가하지 않고 당신을 떼어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그러니 그 때까지 몸을 보전하고, 연구에 응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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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은 (이 정도로) 죽지 않아!
질리언, 그러니까 엘리엇과 조우한 외계 생명체의 원래 모습은 끊임없이 분열을 반복하는 부정형의 군체 형태입니다. 심장 박동과 혈액의 순환으로 살아가는 인간과 달리 질리언은 모든 세포의 존재 그 자체를 통해 살아 있습니다. 지금의 그가 겉보기에는 평범한 인간의 모습이지만 별다른 순환이나 대사 활동 없이도 살아있고, 아무리 치명적인 급소를 공격당해도 본래의 형태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은 인간인 엘리엇에게 침투했더라도 한때는 부정형이었기 때문이에요.
물리적 사유, 즉 대부분의 외인사로 통칭되는 외상으로는 죽지 않습니다. 타격, 절단, 심지어 토막이 나는 등 인간으로서는 영락없는 즉사급 부상을 입어도 세포만 죽지 않았다면 얼마든지 다시 붙어 원래 상태로 돌아갈 수 있지요. 이를테면 심장을 공격당했을 때, 인간이라면 심정지와 과다 출혈로 사망하겠지만 그에게는 외피가 조금 찢어진 것뿐입니다.
다만 외계인이라고 불사는 아닙니다. 세포가 곧 생명인 만큼 손상되었다고 해서 무한정 재생할 수는 없어요. 감전, 화상, 동상 등의 상처를 입으면 그 부분의 세포가 다른 세포와 연결 불가능한 상태로 죽기 때문에 보통 사람처럼 데미지를 입습니다.
(ex) 몸의 절단면을 불로 지지면 재생하지 못한다.